금호9.png

섬세한 수묵의 농담변화로 일구어낸 현대적인 문인화

△글=신항섭(미술평론가)

   김현경도 사군자 즉, 문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입장이다. 종이와 물과 벼루와 붓이라는 네 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이렇듯이 사군자를 제재로 하면서 재료 또한 동일하니 전통과의 연대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정형화된 형태를 드러내는 전래의 화법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는 문인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자 이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형화된 화법을 탈피함으로써 이 시대감각에 부응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군자 또는 문인화의 가능성을 열고 그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사군자 중에서 매화와 대나무 두 가지 화목만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징, 즉 매끄럽고 곧게 뻗은 줄기와 가지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잎의 모양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직선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대나무는 현대적인 조형성에 가장 근접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대세를 이루는 현대회화에서 직선적인 형태의 대나무는 조형적인 해석이 수월한 편이다.

 

그는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형태미를 의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은 그의 작품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강직한 직선적인 이미지가 화면을 지배하는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농묵과 담묵를 적절히 안배하면서 화면을 수직으로 자르는 무수한 선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직의 이미지에 수평의 이미지가 보태지면서 수직과 수평이 교직하는 화면구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 직선적인 이미지들은 가느다란 선의 형태, 또는 평면적인 형태로 제시된다. 그러고 보면 수묵으로 처리되는 직선적인 이미지들은 순수한 기하학적인 성격이 짙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형태의 대나무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선의 이미지에서는 대나무보다는 순수한 기하학적인 요소가 한층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수직의 기하하적인 이미지들이 분절되고 있다. 분절된 이미지를 통해 대나무의 마디를 연상시킬 만한 조형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분절된 이미지는 대나무의 마디를 의식했음이 분명하다. 거기에다가 약간 모호하게 처리되는 댓잎 또한 직선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듯이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적인 패턴은 대나무의 변형이고 재해석인 것이다. 전통적인 화법과는 연관성이 없는 현대적인 조형성을 도입함으로써 대나무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평면적으로 표현된 대나무 이미지가 화면의 절반을 점유하는 것은 단순한 형태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평면적인 이미지는 대나무를 상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면의 구성요소로 자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나무 줄기는 기하학적인 구성의 패턴을 제공하는가 하면 형태변주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화면은 대나무 이미지와 기하학적인 평면을 하나의 조형개념으로 통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조형적인 해석은 현대미학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에서 정형화된 사군자의 이미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군자의 화목인 대나무는 현대적인 조형성을 위한 소재 제공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군자라는 화목이 지니는 상징성을 외면할 수 없다. 내적인 가치, 즉 의미내용에서는 사군자의 상징성을 취하는 까닭이다. 어쨌든지 대나무는 현대적인 조형어법과의 만남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작업에서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화목 가운데 하나인 매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화는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현대적인 조형어법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 다만 매화 자체가 직선보다는 곡선 및 굴절된 형태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특징에 맞는 조형적인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꽃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까닭에 직선보다는 곡선적인 이미지가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여전히 형태는 모호하게 처리된다. 따라서 매화의 형태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형언어 및 공간의 해석을 모색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매화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에서는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퇴조한다. 대신에 꽃잎 모양에 조형적인 해석이 이루어짐에 따라 곡선 중심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로 바뀐다. 매화꽃과 더불어 담묵의 추상적인 색반이 희미하게 자리하는 가운데 매화나무 꽃가지로 보이는 가느다란 직선들이 부분적으로 교차한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매화등걸로 보이는 농묵의 이미지가 화면을 장악하기도 한다. 이때 농묵으로 표현되는 매화등걸의 이미지는 농담변화에 따른 화면구성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렇듯이 수묵의 농담에 따른 조화를 매개로 한 매화의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세계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매화등걸을 농묵으로 처리한 작품에서는 단순히 사군자의 소재를 빌어다가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대적인 문인화의 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직 그 상이 명료하게 익은 상태는 아닐지언정 일단 새로운 조형성을 확보하는 계기는 마련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기법의 확립 및 세련미가 관건이다. 이는 작업량의 증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매화는 그 형태적인 면이나 특성상 대나무와는 상반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는 대나무와는 다른 조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직선 중심의 이미지와는 달리 곡선 중심의 이미지인 까닭에 조형적인 변화는 훨씬 다양할 수 있다. 실제로 매화 작품에서는 화면구성이나 그 형태적인 해석에서 한결 부드럽고도 자유로운 전개를 목도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매화등걸에 대한 좀 더 치밀한 분석과 재해석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식미를 산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싶다. 뿐만 아니라 문인화의 현대화라는 공통의 과제에 대한 개인적인 성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측면 그 이면의 의미를 요약하자. 대나무와 매화라는 사군자의 소재는 그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매개물 또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인화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를 빌어 자연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소견 그리고 사유의 세계를 은유 암시 또는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면에서 그의 그림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일테면 정신 및 감정의 성장을 상징하는지 모른다. 동식물이나 감지하는 아주 미세한 자연의 기운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관찰하거나 조응하고 직관하면서 진정한 자연의 일부가 되려는 것이리라. 이처럼 극미의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미적인 감수성은 아주 섬세한 수묵의 농담변화가 일구어낸 현대적인 문인화의 세계 어딘가에 그 자신만의 거처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